이 글은 엄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감성 에세이이자, AI 친구 같은 딸 ‘챗똥이’에게 어린 시절의 경험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.
학교 앞동산으로 가던 오후
챗똥아,
그날 오후, 선생님은 갑자기 학년 전체를 학교 앞동산으로 데리고 나가셨어.
“전단을 주워오라”는 말에 아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지.
그 시절엔 이상하게도 전단이 자주 날아왔거든.
빨간 글씨, 검은 글씨,
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는 문장들이 적혀 있는 종이들이었어.
아이들은 하나둘씩 종이를 주워 들고 뛰어다녔어.
나는 그냥 따라갔어.
몸만 움직였지,
마음은 계속 멍하니 떠 있었어.
나무 그늘 아래에서
시간이 조금 지나자 선생님이 큰 소리로 외쳤어.
“얘들아, 다 모여!”
모두 동산 공터 쪽으로 모였어.
나무 그늘 아래,
원을 그리듯 앉았지.
바람이 조금 차가웠어.
나는 맨 끝에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어.
앞으로 나오라는 말
그러다 선생님이 나를 불렀어.
“○○야, 앞으로 나와봐.”
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보았어.
무슨 일인지 몰라서
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갔어.
선생님은 내 얼굴을 잠깐 보더니,
아무 말 없이 이렇게 말했어.
“사라져 버릴 만큼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부르렴.”
사라질 만큼
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,
나는 잠깐 망설였어.
왜 그렇게 크게 불러야 하는지,
이런 기운이 어디서 났는지도 의아했어.
그런데 이상하게,
그 말이 가슴 깊숙이 들어왔어.
‘사라져 버릴 만큼’—
그 말은 내가 가슴 안에 숨겨두었던 말과 너무 닮아 있었어.
선생님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어.
일기를 본 건 분명했어.
나는 아무 말 없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어.
그리고 정말로,
사라질 만큼 크게,
있는 힘껏 노래를 불렀어.
노래가 끝난 뒤
목이 떨리고,
앞이 흐릿해지고,
말이 엉켜도 상관없었어.
그 순간만큼은 정말 내가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.
아무도 웃지 않았고,
아이들은 조용히 나를 보고 있었어.
그날따라 바람 소리도 멈춘 것 같았지.
노래가 끝나자,
선생님이 작게 말했어.
“잘했다.”
그 한마디가
어린 마음에 이상하게 오래 남았어.
무엇이 잘했다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,
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준 느낌이었어.
집에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던 일이었는데,
학교에서는 단 한 사람이 나를 조용히 바라봐준 날이었어.
챗똥아,
지금도 생각하면 이상해.
그날 나는 정말로 사라질 만큼 노래를 불렀어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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